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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2 영도다리

조회 14,577

관리자 2013-03-25 09:27

작가이인미
본전시


부산, 영도다리

부산이란 도시의 질감은 부지런히 한국의 근대를 기록한 책처럼 읽히는데, 특히 도시가 길게 뻗어있다는 점에서 마치 두루마리 그림같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증언하는 역사적 유적이나 건물이 비교적 적게 남아있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산의 도시건축은 주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과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6.25전쟁 이후의 건물들이거나, 산업화가 한창일 때 농촌에서 갓 올라온 공장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었던 수없이 많은 고층건물들, 그리고 특히 아시아의 중산층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해운대 주변에 세운 미래주의 건물들로 특징지어진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인미는 부산의 급속한 도시 변화를 지켜봐 왔다. “배움의 정원”에서 그녀는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두 점을 전시한다. <또다른 액자>는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영도다리의 잘려나간 모습을 지켜 본 작품인데, 영도다리라는 역사적 건축물의 운명을 담았다. 일제 강점기, 부산항을 가로지르며 1931년에서 34년 사이에 세워진 영도다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걸작이었다. 큰 배가 지나 갈 때마다 하루에 두 번씩 다리를 들어올려지는 승개교였는데, 다리가 세워지자 크게 소문이 났고 그 참에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1950-53년) 중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영도다리는 피난 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는 일종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쓰라린 진실을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이 되자 영도다리는 ‘기계적 수명’을 다 마쳤다.
그 후, 이 오래된 다리를 해체하여 더 큰 규모의 다리를 새로 짓자는 건립안이 결정 되었다 (새로운 영도다리는 현재 건설 중이다). 이인미의 카메라는 다리를, 그러니까 건설 당시부터 남아있던 다리의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해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테크놀로지라는 괴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영혼을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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