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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4 금지된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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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5-07-30 16:45

작가룰라 할라와니
10년 전 평화 협정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나는 여느 많은 팔레스타인인처럼 평화에 기대를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평화 협정이 발전되면서, 그에 잇따른 사건들은 나를 근심으로 가득 차게 했다. 나의 도시 예루살렘을 잃을 것 같은 근심, 추방된 팔레스타인인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잃게 될 것 같은 근심 등등. 시간을 흘러갔고 내 눈에 모든 것이 더 악화돼 보였다. 땅은 더 뺏겼고 더 많은 이스라엘인 주거지가 팔레스타인 땅에 생겨났으며 더 많은 살인이 자행되었다.
2001년 3 월 28일, 대규모 이스라엘 침략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라말라에 있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가보았던 모든 거리와 광장은 어둡고 텅 비어 있었다. 그날 이스라엘 군대와 그들의 탱크를 제외하고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차가운 절망을 느꼈다. 그날 내가 길에서 본 유일한 팔레스타인인은 한 노인이었다. 그는 총에 맞아 죽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이전에 그 똑 같은 거리들을 걸어 다니는 것은 보았었다. 그 날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그의 얼굴을 지울 수가 없었고 답이 없는 수많은 질문들로 내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평화에 대한 나의 희망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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