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회 4,677
관리자 2022-12-16 13:12
〈이름도 없이〉(2004-2007)는 덴마크의 유명한 조명 회사인 르 클린트에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겹겹이 종이를 접어 만드는 르 클린트 조명갓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유명한 제품이다. 1901년 어느 한밤중에 조명 갓이 필요했던 르 클린트의 할아버지가 종이로 조명 갓을 만든 이래 클린트가의 사람들은 종이를 접어 각자 이런저런 형태를 실험해 보며 목적에 맞게 사용했고, 1943년 르 클린트의 아버지가 이를 사업화했다. 종이 조명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클린트가의 종이‘접기’는 이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종이를 접는 과정은 제품 생산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였고, 르 클린트를 비롯한 여성들이 주로 이 작업을 담당했으나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이익을 얻는 것은 사업을 운영하는 르 클린트의 아버지였다. 그는 18세의 르 클린트에게 그녀의 이름으로 조명을 판매하는 데 동의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또한 25년 뒤에 르 클린트는 그 조명으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권한을 형제에게 넘긴다는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작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자 했으나 자신의 작업이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계획을 변경한다. 이를 대신하여, 르 클린트의 자서전을 읽고 그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금 이야기를 만들고, 도서관과 박물관을 찾아 르 클린트의 이야기와, 조명, 그리고 이름 뒤에 가려진 사람의 흔적을 추적했다.
1974년 덴마크 로스킬데 출생
덴마크 코펜하겐 거주
피아 뢰니케는 아카이브와 수집 행위를 기초로, 식물학과 역사 속 여성 활동가, 건축가, 예술가의 작업 환경과 관점 등을 연구하며 시간적 제약과 형식주의에서 벗어난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을 주로 이어 오고 있다. 《Drifting Woods》(예블레 콘스트센트룸, 예블레, 2021), 《Word for Forest》(파라옐 오악사카, 오악사카, 2019), 《The Cloud Document》(오버가든 인스티튜트 오브 컨템포퍼리 아트, 코펜하겐, 2017) 등 최근 몇 년의 전시를 통해 덴마크 식물학자들의 식물 표본 수집을 위한 탐험 여정을 따라가며 코펜하겐의 식물원에서부터 광활한 멕시코 숲에 이르는 리서치를 진행했고, 표본, 압화, 그라비어 사진, 수집 장소, 일자, 위도와 경도, 고도 등의 메타데이터에 기초한 지도 제작 등 다양한 재현 방식을 통해 식민주의와 영토화 전쟁에 기반한 영역 개념, 식물의 이주, 체계화와 관련된 지정학적 조건들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