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6부산비엔날레
혼혈하는 지구,다중지성의 공론장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
비엔날레는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예술인과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전 세계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토론하는 다중지성의 공론장입니다. 이는 문학이나 음악, 영화 등 다른 문화 영역이 가지지 못한, 미술이라는 장르와 비엔날레라는 형식만이 가진 고유한 장점입니다.
2016 부산비엔날레는 Project 1과 Project 2를 포함해서, 23개국 121명(팀)이 참여합니다. 미술뿐만이 아니라 건축, 디자인, 공연과 세미나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질적 언어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약 2,000평)과 F1963(고려제강 수영공장, 약 3,000평) 전체를 활용하여 규모면에서도 역대 최대가 될 것입니다.
2016부산비엔날레는 예년의 본전시, 특별전의 구성과 달리 Project 1, Project 2 두 개의 전시와 이를 비교 연구하는 세미나인 Project 3으로 구성됩니다.
Project 1은 한·중·일 3개국, 5명의 큐레이터들에 의해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960~80년대의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입니다.
Project 2는 윤재갑 전시감독이 기획하며, F1963(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을 주제로 1990년 이후에 대두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을 조망하는 전시입니다.
Project 3은 학술, 공연, 교육 등의 프로그램들이 기획되어, 전시주제를 장르 융·복합적인 접근으로 확장하여 조망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이를 통해 90년대 이전의 자생적, 로컬 아방가르드 시스템과 90년대 이후에 대두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 이 둘의 관계(연속-불연속-습합)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전시 형식으로서의 ‘비엔날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며, 작가적 존재에 대한 반성과 비판입니다.
Project 1은 한·중·일 3개국, 5명의 큐레이터들에 의해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60~80년대의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입니다.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에서 ‘an’은 아방가르드의 전위 정신은 하나일 수 있다는 의미이며, ‘other’는 전위정신은 하나일 수 있으나, 한·중·일 3개국의 예술이 당시에 처한 상황과 형식은 저마다 다름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중·일 3개국이 아시아를 대표할 수는 있지만 아시아 전체를 포함한다고 할 수 없기에 알파벳 순에 따라 ‘china-japan-korea’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3개국 총 64명(팀)의 작품 137점이 출품될 예정이며, 한·중·일 3개국의 공동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하고 각국의 주요 자료들을 비치함으로써 세계미술사 속에서 아시아 3국의 전위예술의 흐름과 배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각 나라별 섹션의 전시는 중국의 경우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를 기점으로 1995년까지이며, ‘북경의 봄’과 천안문사태 그리고 1996년의 원명원 사태까지 이어진 일련의 저항과 갈등의 시기를 다룰 것입니다. 일본은 ‘그라운드 제로’라고 하는 히로시마 원폭이후부터 80년대 말까지의 전위예술, 구타이, 모노하, 슈퍼플랫의 일부분을 포함합니다. 한국은 70-80년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나 자유를 추구하면서 단색화나 민중미술의 기저를 이루면서도 미처 조망 받지 못했던 영역을 다루고자 합니다.
많은 미술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Project 1은 망각되고 평가절하된 60~80년대 한·중·일 3개국의 전위미술을 복원하고 세계미술사의 흐름 속에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시는 한국 국내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미술사에서도 처음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 Project 1을 통해 한·중·일의 자생적 전위예술의 영역을 재확인하고 전 세계 미술사의 일부분으로 복원되길 기대합니다. 전시와 동시에 진행될 세미나에는 아시아의 학자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의 관련분야 학자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와 세미나를 통해 한·중·일 전위미술의 실체를 확인하고 미술사적 미학적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197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렸다.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난 중국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동을 겪게되었고 중국현대미술 또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의 미술은 정치(우상)적 목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1976년부터의 ‘포스트-광장’ 시대의 미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중국의 아방가르드미술은 어떤식으로 구축되고 진행하였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작가로서 개인의 심경변화를 어떻게 표현하였나? 작가들은 다양한 철학적 사고와 사회-문화적 이상을 어떤식으로 작품에 표출했나? 이와 같은 질문들은 지난 30여년간의 중국현대미술 관련 전시와 토론을 토대로 2009년 이후부터 많은 미술전문가들에 의해 다양한 견해와 결론을 도출해오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2016의 중국 섹션은 광범위한 토론을 바탕으로 한 중국 아방가르드미술사를 기초로 당시 미술실천의 역사적 상황을 되돌아보고, 역사와 사회의 변화속에서 형성된 사상이 중국 현대미술의 구축과 매핑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가 중국현대미술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구어샤오옌
베이징 민생현대미술관 부관장
프로젝트1큐레이터(중국)
일본의 전위미술은 유럽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당시의 도항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 후 1930년대에는 이미 절정에 이르렀고,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 국내에서 군부가 힘을 얻고, 미술 역시 국책에 협력하는 부속적인 기능으로 바뀌게 되자, 급속히 쇠퇴하여 1940년 전반에는 거의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의 전위는 이미 한 번 사멸되었던 것이다. 일본 미술계에 다시 한번 전위가 부활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각자 이전의 양식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일본 화단에 도전장을 던진 오카모토 타로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오카모토가 주장한 전위는 총체가 아닌 「부정」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동참하는 추종자들은 전위를 「남의 흉내를 내지 않는 」 혹은 「남과 다른 것을 하는」 행위로 해석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백화요란(百花繚乱)’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각양각색의 전후 일본 전위미술이 탄생하게 된다.「구체(구타이)」 「규슈파」 「반예술」 「모노하」와 같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등장한 동향들은 전위라기보다는 자기부정적인 급진주의에 가까웠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동시에 이 급진주의가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발할 수밖에 없던 그 대상은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었고, 그 상징이 되는 것이 1964년에 열린 동경 올림픽과 1970년에 오사카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였다. 국책에 의해 주도되었던 이런 큰 축제가 끝나고, 적대시하던 대상이 사라짐과 동시에 고도 경제성장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전위는 급진주의에서 벗어나 니힐리즘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게다가 경제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생산에서 소비로 이행한 1980년대 이후에는 그 실체를 잃고 거품화되어버리고 만 일본 경제에 대응이라도 하듯, 이전과 같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고 기시감에 가득 찬 서브컬처를 시뮬레이션하는 포스트 전위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것은 패전이라는 역사상의 망각점이었으며,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일본 헌법」과「피폭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임에 틀림없다.
사와라기 노이
미술평론가
프로젝트1큐레이터(일본)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전의 한국섹션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20년간을 대상기간으로 삼아 기성제도권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제도를 넘어서기 위해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해온 작가들을 조명코자 하였다. 이 시기는 단색화와 민중미술,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거대담론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이번전시는 거대담론 양자 사이 중간지대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 작가군들과 활동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단색화의 경우 내용보다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적 속성이 강하고, 민중미술의 경우 양식보다는 담고 있는 내용이 강세를 보였던 점을 감안할 때, 형식과 내용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양자의 경계지점에서 그 상관성을 고민했던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다. 상대적으로 비획일적인 실험적 속성들을 재해석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의 다양한 잠재태를 재평가하고자 하였다. <청년작가연립전>, <제4집단>, <AG그룹>, <혁동인>, <대구현대미술제>, <ST그룹>과 <메타복스>등 80년대 다양한 소그룹활동으로 연결되는 전위적 흐름속에서 이들을 관통하는 한국적 아방가르드의 성격과 속성들을 살핌으로써 2000년대 이후에 출몰하는 다양한 한국현대미술의 연원을 규명하는데 두고자하였다.
김찬동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
프로젝트1 큐레이터(한국)
시공을 초월해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기술은 전 지구를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버렸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하나의 앱 속에는 전 세계 10억 인구가 인종, 종교, 국가를 초월하여 네트워크화 되어 있습니다.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다른 ‘다중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예술인과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토론하는 비엔날레야말로 다중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전시형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문학이나 음악, 영화 등 다른 문화 영역이 가지지 못한, 미술이라는 장르와 비엔날레라는 형식만이 가진 고유한 장점입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아날로그와 디지털, 자본과 기술의 혼혈로 만들어진 ‘이 풍요롭고 가난한’ 세상의 끝자락이 혼혈하는 지구입니다. 그곳은 자본과 기술로 단순히 환원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인류의 삶이 존재하는 곳이며, 현실과 대립하는 인간의 저항과 탈주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는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시장의 비효율성과 인간의 비합리성, 시장과 제도에 종속된 미술의 근원적 취약성 등을 모두 성찰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입니다. 벤야민의 절규처럼 문명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윤재갑
2016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