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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부산비엔날레

주제

2002부산비엔날레

문화에서 문화로
Culture Meets Culture

문화에서 문화로

주제설정배경
2002부산비엔날레의 주제 ‘문화에서 문화로'는 부산비엔날레만이 갖는 고유의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고장 부산은 규모면에서는 한국의 제2도시에 해당하지만, 그 지정학적 위치는 매우 주요한 위상과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지난 1990년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세계화를 경험하였고,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는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의 전지구적 네트워크 위에 자신이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접점에 위치하는 항도 부산의 거주민인 우리는 세계 안에서 수행하여야 할 지역의 문화적 소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부산비엔날레라는 열린 마당에서 우리는 문화의 새로운 ‘만남'을 도모하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면서 상대를 폭넓게 이해하고 진정으로 교류하고자 한다. 이로써 세계 안에 함께 자리하는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펼치려 한다. ‘문화에서 문화로'라는 2002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이와 같은 취지와 의도에서 설정된 것이다.

이념
지난 20세기에 인류는 이념의 대립과 함께 무수한 지역간·계층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폭력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갈등과 폭력에 못지 않게 생태적·문화적 파멸도 겪었다. ‘생태적 문화회복'을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우리가 경청하여 숙고해야 할 것은 하찮게 여기기 쉬운 온갖 미물들도 상생과 공존의 전체 시스템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생명의 존귀함을 누림을 자각해야 한다. 즉 이 시대에 진정으로 요구되는 조화와 순리의 가치를 자연 생태계로부터 배워야 한다.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문화요소를 서로 존중하고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할 때 문화의 진정한 만남과 교류도 가능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문화의 만남과 교류가 약육강식의 경쟁원리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에 있어서는 상호보완과 ‘서로 살림'의 협력원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산비엔날레가 추구하여야 할 이념과 가치의 토대는 그러한 자연생태계로부터 배우는 문화의 만남과 교류로부터 이루어짐을 제시하는 데 있다. 부산비엔날레에서의 만남과 교류는 세계의 모든 나라와 지역들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이로써 차이성에 대한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을 함께 나누고, 문화적 자기실현과 진정한 인류공영의 이상을 성취하고자 한다.

부산비엔날레라는 열린 마당에서 우리는 서로 무엇을 나누고자 하는가?
우리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문화의 어떤 일방적 흐름도 당연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문화의 목소리들을 동등하게 드높이고자 한다. 그렇다고 문화 대 문화의 새로운 대결이나 충돌이 의도된 건 아닌지 의아해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우세도 암시하지 않겠다. 오직 ‘문화의 새로운 평등'을 도모할 뿐이다. 비록 과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제 강점기와 서구 문화의 일방적 이입기를 거치며 형성된 식민과 신식민이라는 이중 질곡의 역사적 잔재가 우리의 현재의 두께를 부분부분 흉하고 왜곡되게 얼룩지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문화적 복수'를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려 하고 여러분들과 진정으로 사귀어보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의 만남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만남의 방식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서로의 문화적 지평의 차이를 인정하도록 하자. 차이는 서로가 함께 존재한다는 증거 아닌가. 그리고 비록 더디더라도 지평들의 진정한 만남을 위한 방법론, 곧 ‘느린 만남의 해석학'을 준비하자. 서로의 지편 속으로 들어가 그 논리를 살아내는 접맥의 전략, 문화적 습합을 위한 인내, 상생의 지혜가 새롭게 물어지길 바란다.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상호 문화적 만남의 정치학과 해석학이 실천되는 열린 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 한다. 이것은 또한 미술이 다시 회복하여야 할 존재론이기도 하다.

의미 이해 방향
‘문화에서 문화로'는 당연히 중심의 문화에서 주변의 문화로의 단순 이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문화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드높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 대 문화의 대결이나 충돌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우세조차도 암시하지 않는다. 비록 과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중 식민의 역사의 잔재가 엄연하지만 우리는 또한 문화적 복수나 문화적 우월을 기도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제 어떤 새로운 만남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만남의 방식과는 다른, 최소한 그 방식을 낯설게 하는, 그래서 새로운 만남의 방법론을 오늘 다시 묻고자 한다. 접맥의 전략, 습합의 인내, 그리고 상생의 지혜가 새롭게 물어지는 자리이길 바란다. 문화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도 좋겠다. 문화들의 조화로운 공존, 강요되지 않은 차이, 서로서로 어울려짐이 만남의 윤리학이 되는 자리이길 바란다. 오늘, 미술은 이 만남의 방법론과 윤리학이 현실화되는 열린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 한다. 이것은 미술이 다시 회복하여야 할 존재론적 모습의 한 측면이다. 부산 비엔날레는 그 알림의 출발점이 되려 한다. 더 이상 기존의 부정적 권력의 비엔날레와는 다른.

의미 추구 방향
문화의 만남, 그리고 지역성과 지역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성의 조화로운 종합을 목표로 하는 2002부산비엔날레는 세계 각지 미술의 동시대적 현황을 한 자리에 모아 교류하고자 한다. 이것은 부산비엔날레만의 고유성 지향은 물론 서구 주도적 문화구도에서 벗어나 동서가 대등하게 상호 교류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주의 논리 속의 부산비엔날레 존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세계성과 지역성간의 모순구조를 극복하여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은 지구촌을 하나의 생활세계로 묶으려는 세계주의에 대한 반성과, 인종과 계층을 초월하는 범세계적 인류애와 보편적 가치를 확보하는 데에 있다. 이로써 세계의 모든 지역들이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근원적 동질성의 상호 교감을 통해 세계적 보편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부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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