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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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09-17 19:27
Acrylic and oil on canvas
162×130cm
회귀
최초의 비엔날레인
미술 대학에 들어갈 때는 들어가서 몇 점 그림 그리지도 못했는데 6.25 사변이 났다. 6.25 사변이 나서 또 도망다니다 살아남았다. 그 다음에는 들짐승처럼 친구들 규합해가지고 무슨 <현대미협>이다 <악뒤엘>이다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지고 전람회를 했고. 꽤 부지런히 날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유망한 청년이었다. 그 당시 그림은 6.25 사변 직후니까 앵포르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가지고 토론도 하고 그룹전체가 앵포르멜 일색으로 되다시피 했었다. 그 당시에내 작업은 추상표현주의적인 그림이었었고 그 다음이 죽음이라든지 제사라든지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에 우리의 우상처럼 생각했던 작가 중에 포트리에라는 작가가 있다. 인질. 탱크에 짓이긴 사람 같은 거를 만들어서 물감 색깔 엷게 칠하고…, 조형적으로도 혁신적이었었지만 나는 6.25사변 때 탱크에 찌그러진 젊은 사람의 머리를 봤고 그게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아있다, 평생. 그러니까 그 당시에 그린 그림들의 제목은 <제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