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아카이브

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탈리 무챠마드

조회 391

2024부산비엔날레 2024-12-03 13:52

나탈리 무챠마드

<엔리케>, 2024, 천에 왁스, 염색, 흙 혼합물, 스테인리스 거울 철판에 페인트, 가변크기.

 

나탈리 무챠마드의 설치 작업 <엔리케>(2024)는 ‘누가 역사를 약탈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소위 ‘위대한 발견’이라는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서 가려지고 부재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작가의 설치에는 바틱(batik) 천으로 만든 깃발 패치워크, 코코넛 섬유로 엮어 정향으로 마감한 점토, 금속으로 된 명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1495년경에 태어난 엔리케 데 말라카(Enrique de Malacca)를 조명한다. 그는 역사적인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노예이자 통역사로, 원래 수마트라 출신이었다. 마젤란은 1519년 스페인 왕실의 명령을 받아 신대륙으로 가는 통로를 찾아 서쪽 항로를 통해 몰루카(Moluccas) 해협을 건너기 위해 엔리케와 함께 떠났다. 무챠마드는 이때 마젤란이 소유했던 범선 다섯 척, 트리니다드(TRINIDAD), 콘셉시온(CONCEPCION), 빅토리아(VICTORIA), 샌안토니오(SAN ANTONIO), 산티아고(SANTIAGO)를 재현하기로 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항해를 시작하는 범선이 흰색 돛을 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깃발을 달고 있다. 무챠마드는 해적질에 관한 논의를 관점의 문제로 제시한 인도네시아 작가 아드리안 라피안(Adrian B. Lapian)의 『바다의 사람들, 해적, 바다의 왕(Orang Laut, Bajak Laut, Raja Laut)』에서 주장한 관점을 공유한다. 작가는 이미 통용되고 강제되었던 서사를 효과적으로 뒤집어, 다시 쓰기를 제안한다. 1095년 누구의 영토도 아닌, 무인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 ‘무주지(Terra Nullius)’라는 문구가 유럽인들의 영토 점령을 정당화하는 의미로 교황 칙서에 등장했다. 이로 인해 ‘발견자 우선주의’는 기독교 국가가 무인의 땅을 거점으로 만들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다. 인도네시아 땅의 후손인 무챠마드는 소유의 표식이자 거부의 제스처로서 철 명판을 만들어 부산현대미술관을 ‘무주지(Terra Nullius)’로 삼아 점령한다.

 

 

 

 

 

나탈리 무챠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