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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진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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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부산비엔날레 2024-12-03 13:40

홍진훤

<글리치 바리케이드>, 2024, 사진 아카이브, 가변크기. 사진 서영걸 (사진통신).

<더블 슬릿>,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5.1ch 오디오, 60분.

 

2004년 2월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 노동자가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남기고 공장 안에서 분신했다. 사건 직후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의 크레인을 점거하며 투쟁을 시작했지만,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고인은 열사가 아니다.”라고 하며 열사의 영안실을 침탈해 하청노조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추모 공간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운동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당시의 사내하청노조 위원장은 산으로 올라갔고 함께 투쟁하며 노래하던 가수는 늪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를 쓰고 동요를 만들며 여전히 화해할 수 없는 자본주의와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를 되짚으며 땅과 자연, 돌봄과 영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도래할 혁명을 준비하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더블 슬릿>(2024)은 패배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시와 노래로 가로지르며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지 질문한다. 작품을 크게 가로지르는 두 갈래의 내러티브는 산과 늪으로 간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어떻게 충돌하고 화해하는지 감각하게 하는 더블 슬릿으로 기능한다. 파동과 입자가 본래 하나이듯, 세계와 내가 하나임을 인지하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전혀 다른 혁명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지 의심하며 연대한다.

<글리치 바리케이드>(2024)는 홍진훤이 기획하는 사진가 서영걸의 사진 개인전이다. 서영걸은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을 기록한 사진가다. 그는 홍진훤의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2021)에 인터뷰이(interviewee)로 등장해 민주화운동을 증거하는 동시에 당대 운동의 한계에 대해 토로했다. 또한 19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홍진훤의 신작 <더블 슬릿>(2024)에서 노동운동의 영웅들이 자본화, 관료화되며 계급운동의 배신자가 되어가는 상황의 증거물로 사용된다. 이처럼 서영걸은 늘 자신의 기록을 의심하며 과거화 되어가는 운동의 기억을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물이다. <글리치 바리케이드>에서는 1980-90년대 서영걸이 촬영한 ‘영웅’들의 사진들 위로 함께 촬영된 오류투성이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짐작게 하는 사진들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노출이 맞지 않거나 이중 촬영이 되기도 했다. 또한 긴급하게 진행되는 투쟁 과정과 배포 과정은 필름 현상과 스캔의 오작동을 만들었다. 투쟁에 무용했던 이 오류들은 어렴풋하게 드러나는 역사적 장면들과 뒤섞여 역설적이게도 당대의 운동 에너지를 현재화한다. 이미지 너머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도록 일종의 심리적 바리케이드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의 절박한 시공간을 이곳으로 소환한다. 홍진훤은 서영걸 개인전을 통해 지금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바리케이드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홍진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