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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들여다보면 더 재미있는 2023바다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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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11-08 16:47

  • 바다와 여성 노동자, 인간의 삶의 서사를 풀어낸 부산 작가 왕덕경과 김덕희
  • 수생 유기체(미역, 다시마 등)와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들
  • 해운 업체의 파산, 녹색운항항로 개발과 해상 도시 건축 등 부산과 밀접한 주제 다뤄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조직위원장 박형준 부산광역시장)가 10월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 (Flickering Shores, Sea Imaginaries)》를 주제로 일광해수욕장에서 주최하고 있는 2023바다미술제가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20개국 31팀(43명)이 참가한 이번 전시는 그리스 출신의 기획자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Papadimitriou)가 전시감독을 맡았으며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을 비롯하여 인근의 실내 전시장 3곳에서 총 4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며 더욱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나본다.

바다와 여성 노동자, 인간의 삶의 서사를 풀어낸 부산 작가 왕덕경과 김덕희

부산의 왕덕경 작가의 <발 아래 모래알 사이로 물이 스며들 때>는 소설가 오영수의 저작 ‘갯마을’에서 유래된 작품이다. 1965년 동명의 영화가 일광에서 촬영된 바 있다. 갯마을에 사는 주인공 해순은 결혼한 지 열흘 만에 폭풍우로 어부인 남편을 잃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지만 수치심으로 연인과 함께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연인마저 사고로 잃게 되고 해순은 결국 마을로 돌아온다. 소설은 당시 여인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반영하며 이들의 비극적 삶을 그려낸다. 이 오랜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고향, 현실인 일광에서의 기억을 포착하기 위해 일광에서 살고 있는 일광 여인들을 인터뷰하고, 글들로 방안을 메웠다. 한켠에 쌓인 작품의 일부인 원고에는 일광 지역에서 십수 년을 살아온 여인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같은 해 인터뷰 속 여인들은 해삼, 전복, 멍게가 그득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미역을 캐고 포자를 뿌리던 방법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정월대보름 마을과 마을 주민의 안녕과 태평양 바닷길을 떠나는 고기잡이배들의 무사 귀환 등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던 모습들도 생생히 묘사했다. 작가는 해안과 바다가 남성 위주의 공간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착화되어온 성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역사를 관통하여 바다의 역사와 이에 의지한 생계에 중요하고 고유한 역할을 여성이 해왔음을 함께 이야기한다.

지역의 이야기는 진주와 비즈를 엮은 그물의 형태로 관람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김덕희 작가의 <메아리, 바다 가득히>가 그것. 가로, 세로 8미터, 높이 4미터에 달하는 이번 출품작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누군가를 향해 쓰인 메시지이다. 둥글고 빛나는 진주와 길쭉한 비즈를 모스 부호로 공모를 통해 수집한 사연들을 엮어내었다. 이야기들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누군가를 향해 쓰인 메시지로, 섬세한 가닥 안에 얽혀 바다가 많은 사람에게 어려움과 위태로움의 공간임을 기억하게 한다.

수생 유기체(미역, 다시마 등)와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들

2023바다미술제 실험실에서는 가로, 세로 50cm의 커다란 수조가 포함된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 <온전해지는 방법>의 일부인 수조에는 마리모와 같은 수생 식물 약 10여 종과 함께 사람의 뼈가 들어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조를 채운 물속에는 인간의 땀, 눈물과 같은 분비물도 함께 섞여 있다. 영국 런던 근교의 바닷가 마을 마게이트 출신 카시아 몰가(Kasia Molga)는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바다 위의 해군 상선에서 지낸 경험을 시작으로 변화하는 자연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대표 작품 <바다가 되는 법>에서 작가는 작은 해양 생태계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인간의 눈물을 모아 화학 성분을 분석했고, 이번 작품을 통해 해양 생태계를 위한 가장 풍부한 영양분이 되려면 우리는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인체에서 이런 영양분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수조 옆 유리병에 담긴 다양한 신체 분비물은 바닷물과 섞여 선별된 수생 식물이 성장하고 발달하도록 영향을 주며, 우리가 분리된 개체가 아닌 자연과 해양을 이루는 부분임을 상기시킨다.

일광의 유명 대형 커피 전문점 앞에는 독일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양자주 작가의 작품 <바다로부터>가 자리해 있다. 150개의 벽돌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벽돌의 제작 과정이 신기한데, 벽돌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섞인 해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전까지 기와집과 초가집은 볏짚과 갈대를 섞은 흙으로 지어졌다. 작가는 전통 한옥과 초가집에 관심을 가지고 빠르게 사라지는 흙집과 관련된 기록과 자료를 연구해왔으며, 해초를 건축 자재로 만든 집이 부산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수많은 난민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빠르게 임시 거처를 지어야 했고 전통 흙집에 쓰였던 볏짚 대신 바닷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해초를 흙에 섞어 집을 지었다. 작가는 해초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던 방법을 재연하고자 하였다. 이제는 자취를 감췄지만 기발하고 창의적이며, 소박하지만 혁신적이었던 흙과 해초로 집을 짓는 방법을 2023바다미술제에서 되살려냈다.

지난 10월 28, 29일 양일간 일광해수욕장 왼편에 자리한 조용한 시골 마을 이천리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바로 율리아 로만(Julia Lohmann)과 김가영 작가의 워크숍 ‘해조공예과:기장다시마로 오브제 만들기’가 열렸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참여한 워크숍에서는 해양 식물이 예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고 직접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참가자들은 천연소재인 라탄과 말린 미역을 이용해서 모자와 브로치 등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고려 시대에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것이 풍습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은 작품 <해조공예과 스튜디오>를 통해 천연자원인 해초를 탐구하며 해초를 또 다른 추출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일광의 할매, 할배 신당 사이에 자리한 창고에 전시된 이 작품은 두 작가에 의해 현장에서 제작되었다.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김가영 작가는 이천 마을 주민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당에 기도를 드리러 찾아온 마을 주민들은 미역과 다시마가 유명한 지역에서 식재료가 아닌 예술로 활용되는 모습을 이색적으로 바라보며 그들만의 특별한 레시피를 제안하기도 하고, 미역을 손질할 수 있는 작업 도구들과 앞치마 등의 선물도 받았다. 김가영 작가는 직접 지역민들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다며 감사를 전했다.

해운 업체의 파산, 녹색운항항로 개발과 해상 도시 건축 등 부산과 밀접한 주제 다뤄

2016년 영국의 작가 레베카 모스(Rebecca Moss)는 캐나다 밴쿠버의 한 갤러리가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작가는 제네바행 컨테이너선을 타고 이동하면서 태평양을 횡단해 23일 후에 상하이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레지던시가 시작되고 일주일 만에 해운 업체는 파산을 선언하고 만다. 업체가 부두 입항료를 낼 여력이 없게 되자, 선상의 승객과 화물은 바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선상의 유일한 예술가였던 모스와 두 명의 승객, 선원들은 일본 연안에서 13km 떨어진 국제 수역에 닻을 내리고 추가 지시가 나올 때까지 두 주가 넘는 시간 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작품 <국제 수역>은 고립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된 영상작품으로 당시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시에 어디나 존재하는 글로벌 해운 산업을 조명하며 동시에 혹독하고 부당한 선원 근로 환경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제이콥 허위츠 굿맨 & 다니엘 켈러(Jacob Hurwits-Goodman & Daniel Keller)의 작품 <시스테더스:해양도시건축(The Seasteaders)>는 타히티에서 최초로 개최된 해양 도시 건축 학회를 기록한 영상이다. 작품은 해상의 미래에 대한 해양 도시 건축 지지자들의 신념과 비전을 들려준다. 지난 2021년 부산시도 유엔 해비타트(UN-HABITAT)와 해상 도시 개발기업 오셔닉스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속 가능한 해상도시’를 개발 중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해양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피난처, 에너지, 식량 수요를 맞출 수 있다. 부산시는 세계 첫 ‘해상 도시’를 오는 2030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도 2023바다미술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제이콥 볼튼(Jacob Bolton)과 미리암 마티센(Miriam Matthiassen)이 결성한 리퀴드 타임(Liquid Time)은 해운, 금융, 해양 세계의 일시성과 관련하여 작업하는 리서치 듀오 팀이다. 이들의 작품 <메탄올 블루(Methanol Blue)>는 화물선 한 척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싱가포르까지 세계 최대 녹색운항항로 중 하나를 따라 이동하는 과정을 멀리서 따라간다. 녹색운항항로란 선박을 운항하거나 항만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탈탄소화를 추진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미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산과 미국 시애틀을 잇는 노선 도입을 논의 중에 있다. 작가들은 일련의 대화와 조사를 통해 해운 산업의 자연 친화적 미래를 그려보고 가능성은 있으나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자연 친화적 전환의 법적, 경제적 인프라적 조건을 들여다본다.

 

폐막을 2주여 앞둔 2023바다미술제는 오는 11월 19일까지 기장군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진행된다. 일광해수욕장을 비롯하여 (구)일광교회와 신당 옆 창고, 2023바다미술제 실험실과 같은 실내 전시장과 인근의 강송정 공원, 일광천 등을 전시장소로 활용하였다. 전시 기간 중 매주 금, 토, 일에는 연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 중에 있다. 사전 예약 등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https://www.saf2023.org/)를 참고하면 된다.